입지와 다른 흥망… 결론은 ‘사람’
터가 좋으면 집안이나 기업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요?
풍수는 생기가 흩어지고 모이는 현상에서 시작해 중국의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한 이론을 체계화함으로써 길흉화복을 설명합니다.
땅속의 생기에 대한 존재나 실제가치가 증명된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과거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쳐 현대사회에 이르러서도 풍수를 믿는 사람들은 좋은 입지를 찾아 터를 잡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자연스레 상권이 발달하고 일자리도 늘어납니다.
이렇게 되면 지역의 부동산 가치가 올라가고 재물을 쌓는 데 영향을 주죠.
특히 재력이나 권력이 있는 이들은 풍수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배산임수형의 고택. /사진=이미지투데이
◆산과 물 좋은 풍수명당 어디?
풍수지리학에서는 ‘산이 좋으면 인물이 나고 물이 좋으면 돈을 번다’고 합니다.
내 재벌기업 대부분은 선영이나 사옥, 공장 자리를 봐주는 풍수전문가가 있을 정도로 명당에 관심이 많습니다.
2008년 삼성그룹 계열사가 옮겨간 서울 서초동 사옥은 풍수전문가들의 의견으로 터가 정해졌다는 게 정설이죠.
또 재벌가 오너들 사이에서 돈이 따라오는 명당으로 여겨지는 곳은 서울 장충동입니다.
풍수지리 학자들은 장충동을 ‘장군이 지휘하는 대좌형의 명당’으로 묘사합니다.
주변 산세가 진을 치는 주둔지와 같은 지형이라 삼성과 신세계, 한솔 등 범삼성가의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서울 여의도에는 많은 금융투자회사가 있지만 삼성증권 본사는 한번도 여의도에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풍수지리학에 따르면 여의도는 강바람이 세서 방송국이나 교회처럼 기가 센 곳은 몰라도 증권사처럼 기가 약한 회사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미래에셋그룹이 2011년 여의도에서 중구 수하동의 미래에셋센터원빌딩으로 이전한 것도 박현주 회장의 풍수지리 선호에 따른 행보라는 후문입니다.
미래에셋센터원빌딩의 터는 조선시대 때 돈을 찍어내던 주전소 자리입니다.
미래에셋센터원. /사진=머니투데이 DB
◆풍수 명당에서 망한 기업 왜?
그러나 풍수전문가도 이런 사상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풍수적으로 금융업이 성하기 힘들다는 여의도에는 성공한 금융투자회사들이 여럿 있습니다.
여의도에 본사를 둔 한국투자금융지주는 2003년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장남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이 동원금융지주 설립으로 시작해 현재 카카오뱅크, 한국투자증권, 한국투자저축은행 등 25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30위권 기업으로 성장했죠.
재벌기업이 풍수에 따라 택한 땅이 모두 명당인 것도 아닙니다.
부영그룹은 2016년 5717억원을 들여 삼성그룹으로부터 서울 태평로 부영태평빌딩(옛 삼성생명 본관)을 매입했습니다.
이 빌딩의 터는 풍수지리업계에서 명당으로 검증된 땅인데요.
인왕산과 남산에서 흘러나오는 좋은 기운이 모여 재운이 넘치는 자리입니다.
하지만 오피스 임대사업을 위해 매입한 부영태평빌딩은 공실률이 증가하며 회사에 피해를 끼쳤습니다.
이듬해인 2017년 부영의 핵심 계열사 부영주택은 영업손실이 1555억원에 달해 2011년 이후 첫 적자를 기록했죠.
◆그래서 풍수는 믿을만한가?
“대통령 관저가 풍수상 불길한 점이 있어 옮겨야 한다.”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유홍준 교수가 올초 한 말이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정부 관계자가 풍수를 이유로 청와대 터가 안 좋다는 주장을 해 사회적으로 비판을 받은 것인데요.
하지만 그만큼 풍수가 과거의 유물만이 아님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했습니다.
풍수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기업들도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는 학문입니다.
재력가나 권력자들이 풍수를 탐닉하는 이유는 ‘운칠기삼’이라는 말처럼 세상일이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잘 풀리지 않아서입니다.
풍수를 경신하는 학자도 원인은 사람에게 있지 땅에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청와대 터가 좋지 않은 이유는 지리적으로 민심과 괴리되기 쉬운 폐쇄성 때문이지 터가 나빠서가 아니다”
- <명당은 마음속에 있다>를 저술한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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