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열여섯살 새신부 이야기◈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조부로부터 사자소학을 배우고, 집으로 찾아온 훈장으로부터
사서삼경을 배우고 별당에 틀어박혀 사군자나 치던 열여섯살 규수가
양반 가문 헌헌장부 둘째아들에게 시집갔다.
신랑은 초시에 합격한 백면서생으로 깊은 학식에 기품 있고 예절 발라 ‘저런 사람은 통시(화장실)에도 안 갈 거야’라고 신부는 속으로 생각했다.
첫날밤, 촛불을 끄고 나자 그렇게도 점잖던 신랑이 짐승으로 돌변해서
홀랑 옷을 벗고 신부의 옷도 발가벗기고는 입에 담지 못할 망신스러운 짓을 서슴없이
해치우는 것이 아닌가.
아프고 놀라서 밤새 쪼그리고 누워 눈물을 흘렸는데, 코를 골고 자던 신랑이
새벽녘에 깨어나 또다시 짐승이 되어 몹쓸 짓을 했다.
동창이 밝자 간밤의 그 짐승은 의관을 정제하고 의젓하게 점잔을 빼며 지난밤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시치미를 뗐다.
새신부는 쓰라리고 부끄럽고 낭패스러워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 남편은 태연하게
웃고 사설을 늘어놓았다. 도대체 저게 양반인가. 저게 인간인가.
남편은 시집에 두고 혼자 친정으로 신행 가던 날, 신부는 제 어미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그 남자하고 살지 않겠다고 말했다.
친정어머니는 난감해졌다.
어릴 때부터 남녀유별만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가르쳤지 남녀합환에 대해서는 한마디
귀띔도 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친정어머니도 양반 가문 출신이라 한평생 말과 몸가짐이 한치 흐트러짐 없이
조신하게 살아왔기에 새삼스럽게 이제 와서 딸에게 음양의 조화를 적나라하게
말할 수 없었다.
친정어머니는 행랑어멈을 조용히 불렀다.
“여보게, 내 오늘 밤 자네에게 부탁이 하나 있네.”
“제게 부탁이라니요?”
새신부 친정어머니가 행랑어멈에게 귓속말을 하자 행랑어멈은 얼굴을 붉혔다.
행랑채는 방 두개가 미닫이를 가운데 두고 이어져 있다.
친정어머니는 신행 온 딸에게 별당은 구들을 고친다 둘러대고 행랑채 방 한칸에
잠자리를 마련해 두었다.
행랑아범 내외가 부스럭거리더니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아니어도 상념에 젖어 누워 있던 새신부가 살며시 몸을 일으켜 미닫이 사이로
눈을 갖다댔다.
호롱불도 끄지 않은 채 두 짐승(?)이 벌거벗은 채 온 방을 헤집고 뒹굴었다.
이튿날 신부는 어머니에게 “그런 짓은 쌍것들이나 하는 짓이지…” 하며 역정을 냈다.
어머니는 조용히 “내가 너를 어떻게 잉태했는지 알려 주마.”
그날 밤, 새신부는 안방 장롱 속에 앉아서 장롱 문틈으로 안방을 내다봤다.
술을 한잔 마신 아버지가 안방에 들어와 촛불을 끄려 하자
어머니가 말했다.
“오늘은 불을 끄지 마십시오.”
“그거 좋지요.”
그 점잖은 아버지와 어머니도 행랑어멈 내외와 다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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