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조선의 주산인 백악산의 맥을 끊기 위하여, 경북궁 후원 백악산 밑에 총독부 관저를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해방이 되어 경무대란 이름으로 이승만 대통령집무실과 거처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몇 번의 개보수와 증축을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도 예비 대권주자들이 청와대의 주인이 되고자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기 싸움을 하고 있지만 청와대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비극은 시작될 것이라는 것이 역대 대통령을 통하여 증명되었다.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국민들로부터 존경과 신망을 받으며 온 국민의 축복과 기대 속에 당당하게 청와대에 입성 하였지만, 청와대를 나올 때는 하나같이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거나,
국민의 지탄을 받는 소인배로 전락하여 청와대를 떠나게 되니 이러한 현상은 청와대의 비극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이러한 청와대의 비극은 칠궁과 청와대 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청와대 옆 인왕산 길, 많은 사람들이 다니면서도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청와대 담장 안에 있는 기와집 몇 채, 청와대의 건물과 어울리지 않는 이 몇 채의 기와집이 무엇인가 궁금해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지만 대부분은 그냥 지나친다.
이 낡은 기와집은 청와대의 일부가 아닌 바로 육상궁으로 지금은 칠궁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그러면 칠궁은 무엇이며 왜 청와대 안에 있는지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칠궁은 본래 모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동이>라는 사극에 나오는 인물로, 조선시대 숙종의 후궁이며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위패를 모시기 위하여 숙빈묘라고 부르며 세워졌다.
구중궁궐에 최하위 계층인 무수리 출신으로 숙종의 눈에 들어, 성은을 받은 덕에 영조를 잉태하게 되었지만, 장희빈의 투기로 온갖 고초를 겪으며 한 많은 삶을 살다 간
‘최무수리’ 즉 최숙빈의 위패가 모셔져 있었으나, 1753년 영조 29년에 육상궁으로 개칭하였으며 그 후 영친왕의 어머니 순빈 엄씨를 포함한 일곱 분을 모셨기 때문에 칠궁이라고 하였다.
칠궁에는 돌아가신 후 왕으로 추대된 원종(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이 된 인조의 생부)의 어머니 인빈 김씨, 조선왕조 후궁 중에 대표적인 인물인 경종의 어머니 희빈 장씨(장희빈), 영조의 어머니인 무수리 출신의 숙빈 최씨, 돌아가신 후
왕으로 추대된 진종(영조의 장자인 효창세자)의 어머니 정빈 이씨,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 순조의 어머니 수빈 박씨, 조선조 마지막 왕세자인 영친왕의 어머니 순빈 엄씨 등 일곱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조선왕조의 임금과 왕비는 죽어서 종묘에 위패가 모셔지지만, 왕의 생모이지만 후궁이기 때문에 죽어서 종묘에 봉안되지 못하고 별도로 위패를 봉안하는 곳을 마련하였는데 그곳이 칠궁이다.
서두에 말했듯이 지금의 청와대 터는 옛날 경복궁의 일부였으나 일본이 조선총독부 관사를 그곳에다 지어 사용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하여 왔지만,
본래 청와대 터는 귀방(鬼方)즉, 귀신의 방위라고 한다.
청와대는 사람이 사는 터가 아니고 귀신이나 신명이 활동하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 것도 숨어서 활동하는 이귀방(裏鬼方)이기 때문에 한 많은 여인들을 모시는 칠궁을 그 자리에 세웠던 것으로 대통령집무실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귀신들과 함께 기거하면서 귀신들을 몰라라하고 있다면 분명 귀신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알려 합당한 대우를 받으려고 그곳에 사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때는 일 년에 한 번씩 칠궁에 제를 지내 일곱 영령들을 위로하여 드렸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이 망하고부터 지금까지 누구 한 사람 칠궁에서 제를 지낸 적이 없으며,
또 제를 올리고 싶어도 올릴 수 없는 처지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필자는 청와대를 당장 옮겨야 대통령과 나라가 편안해 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현실이 그러하지 못하니 대통령으로 당선된 분이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
자신이 믿고 따르는 종교와 상관없이 국가와 민족,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라도 칠궁에다 제를 올렸으면 한다.
그렇게 하여 칠궁에 계신 일곱 영령들과 그 곳에서 활동하는 귀신들을 달래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인들은 전세방을 얻어 가도 사는 동안 주인에게 잘 부탁한다고 인사를 하는 법인데, 하물며 5년 동안 집세도 한 푼 내지 않고 들어가 살면서, 집주인을 나 몰라라 하고 쳐다보지도 않는다면 칠궁에 계신 일곱 영령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살아서는 구중궁궐의 엄격한 법도와 많은 후궁과 정비의 시샘과 음모 속에서 숨 한 번 크게 쉬어 보지도 못하고 살다가, 도리어 왕자를 낳은 것이 화근이 되어 모자가 목숨을 연명하기 위하여 감수하여야 했던 그 수모와 한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자식이 나라의 임금이 되었지만 본인은 죽었어도 후궁이라는 굴레 때문에 종묘에 모셔지지 못하고 경복궁 후미진 한편에 팽개쳐졌으니 그 한인들 오죽하겠는가?
제3공화국 시절 당시 청와대에 근무한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로, 지금처럼 어색하게 담 밖으로 기와지붕이 나와 있게 된 이유가 된다.
인왕산으로 새 길을 내면서 칠궁을 건드리지 않는 방향으로 도로 계획을 세웠지만, 자기의 별장이 도로에 포함된 어느 재벌과 당시의 서울시 책임자의 장난으로 칠궁의 담을 헐어내고 인왕산 길을 내고 지금의 흉측한 모습이 되었으며,
그 해 8월15일 <문세광> 저격사건이 일어나 온 국민들로부터 존경받으며 국모로서의 모범을 보여 준 육영수여사가 서거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몇 년 후 칠궁의 정문을 경호 책임자가 마음대로 방향을 바꾸어 지금의 방향으로 대문을
다시 세우고 난 뒤 다시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이 일어났다고 하니 우연이라고 가볍게 넘겨 버리기에는 무엇인가 이상한 기분이 든다. 오뉴월에도 여자가 한을 품으면 서리가 내린다고 하였다.
더군다나 칠궁의 일곱 여자는 살아서도 한 많은 삶을 살았건만 죽어서까지 경복궁 후미진 곳에 방치되어 자손들로부터 제삿밥 한 그릇 제대로 못 받는 한 많은 세월을 원망하며 독을 품고 있는데, 대통령이 되었다고 인사 한번 없이 마음대로 남의 집에 들어와 사는 사람들이 예쁠 리가 없다.
또 집주인인 일곱 영령들에게 허락도 구하지 않고, 마음대로 주인집 담장을 헐어 길을 내고 그것도 모자라 대문까지 마음대로 바꾸어 놓았으니, 그래도 후손이라고 참았던 한과 분노가 폭발한 결과가 바로 대통령의 서거가 아닌가 한다.
의친왕의 아들인 이석 공의 이야기를 들으면, 어렸을 때 간혹 칠궁으로 들어가곤 하였지만 들어갈 때마다 항상 찬바람이 불고 무시무시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또한 어른들이 그곳에는 출입을 못하게 항상 만류를 하였다고 한다.
옛적에는 봉선(封禪, 한 무제가 천자에 오르고 난 뒤 태산에 올라 하늘에 고한 것)이라 하여 천자에 오르게 되면 자신이 천자가 되었음을 하늘에 고하는 제의를 올렸다.
그리고 자신이 천자로 있는 동안 나라의 번영과 태평을 기원했듯이 우리도 대통령이 새로 취임하면 반드시 하늘에 고하여 자신의 임기동안 국가의 번영과 더불어 국민의 안위와 태평을 기원하였으면 한다.
대통령이 하늘에 천제를 올리는 같은 시간에는 대한민국의 모든 종교가 자신들이 믿는 신께 국가의 번영과 발전을 함께 기도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칠궁에 제를 올리며 일곱 분의 영령들을 위로하고 잠시 사용하겠노라고 고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칠궁의 일곱 분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제를 올린다고 하여 이 땅에 사는 후손된 몸으로 부끄러울 것이 무엇이며 종교를 들먹이며 외면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생각한다.
청와대에서 직접 제를 올리면 더 이상 좋을 수 없겠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곤란하다면 <이씨 종약원>에 일임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종묘도 일 년에 한 번씩 종묘제례를 드리고 있으니 칠궁에 계신 분들도 당연히 자신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일 년에 한 번이라도 합당한 대우를 받고 싶어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21세기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하겠지만, 필자는 칠궁에 계신 일곱 분의 분노에 찬 모습이 자꾸만 느껴져 두렵기만 하다.
언제 칠궁에 계신 일곱 분을 위하여, 아니 대통령의 임기 동안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과 더불어 훌륭한 업적을 쌓아, 퇴임 시에는 취임 때보다 더 많은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역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대통령이 되기를 기원하는 칠궁제를 지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여 본다.
이 글을 처음 쓴 해가 1997년이었다.
그 당시 신문기자로 퇴직한 어느 분이 이 글을 청와대 비서실로 보내, 느닷없이 청와대 비서실로부터 원론적인 답장을 받아 당황한 적이 있다.
그리고 다시 이 글을 누군가 청와대로 전달하여 노무현 정부시절인 2006년 10월 23일 정오에 칠궁에 대한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칠궁 제사를 공개적으로 하지 않고 글을 쓴 필자도 모르게 제사가 진행되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으며, 너무 늦게 시작했다.
또 매년 10월 넷째 주 월요일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진행한다고 하지만,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사람이 죽으면 반드시 지노귀굿으로 죽은 영혼을 인도하고 그 원한을 달래주었다. 그런 연유로 2007년 칠궁에 계신 일곱 영령들을 위한 <칠궁해원굿>을 하려고 준비하였다. 국가의 무궁한 발전과 번영을 기원하고 국민들로부터 영원히 존경받는 전직대통령을 모시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기원하고자 준비하였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과 훌륭한 전직대통령을 모시고 사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되기 위하여 반드시 <칠궁해원굿>은 반드시 해야 된다고 믿고 있다.
아울러 귀신이 사는 터에 나라 대통령의 집무실을 계속 둔다는 것도 큰 문제이므로,
청와대를 옮기는 것 또한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조성제 舞天문화연구소장] <칠궁엔 누가?> 육상궁:숙종의 후궁이며,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 저경궁(儲慶宮):선조의 후궁이며, 추존왕 원종(仁祖의 아버지)의 생모 인빈 김씨(仁嬪金氏) 대빈궁(大嬪宮):숙종의 후궁이며 경종(영조의 이복형)의 생모 희빈 장씨(禧嬪張氏) 연우궁(延祐宮):영조의 후궁이며, 추존왕 진종(영조의 첫째 아들)의 생모인 정빈 이씨(靖嬪李氏) 선희궁(宣禧宮):영조의 후궁이며 추존왕 장조(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映嬪李氏) 경우궁(景祐宮):정조의 후궁이며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綏嬪朴氏) 덕안궁(德安宮):고종의 후궁이며, 영친왕의 생모인 순비 엄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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