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과 풍수

[스크랩] 궁굼한 청와대 풍수지리

발란스건강 2017. 5. 20. 09:53

 

 

 



역대 대통대통령의 불운, 


청와대 풍수지리와 연관


입력 : 2010.10.03 06:27

<사진> 1990년 청와대 안 공사장에서 발견된 표석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

집권 후반기를 맞은 이명박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들의 임기말 불행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청와대를 나와 국정을 운영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일부 풍수지리 연구가는 청와대가 뒤로는 북악산, 앞으로는 남산과 관악산의 정기를 받고 명당수인 청계천이 감아 돌아가 전체적인 입지로만 보면 명당이지만 터가 좋지 않다고 분석했다. 

김승기 대한풍수지리연구원장은 "이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청와대 밖에서 해야만 전직 대통들의 임기말 불행한 전철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지금의 청와대를 지을 때 풍수학인의 자문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지만 풍수지리상으로 매우 잘못된 건축물"이라며 "이 대통령의 집무실이라도 하루 빨리 청와대 밖으로 나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청와대를 거쳐 간 역대 대통령은 임기 말 불운을 맞았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은 4·19 혁명으로 하야했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은 영부인 육영수 여사와 시해되는 운명을 맞았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수뢰혐의로 구속됐으며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IMF 외환 위기와 자식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퇴임 후 검찰 소환조사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윤보선·최규하 전 대통령도 임기말 불운했다. 


일본식민지 시대에 지금의 청와대에 머물렀던 이들의 운명도 다르지 않았다. 청와대 터는 일본식민지 시대에 총독관저가 있던 곳이다. 총독관저에 기거했던 조선 총독들도 불운한 최후를 맞았다. 

일제시대 7대 총독인 미나미 지로(南次郞, 1936-1941년 재임)는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다 자신의 관저를 옮겨지었다. 이곳이 해방 후 이승만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로 사용되다가 윤보선 대통령이 이를 청와대로 개칭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미나미 지로를 비롯해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國昭,1942-1944 재임),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 1944-1945 재임) 등의 조선 총독들도 불행한 삶을 마감했다. 

미나미 지로는 제2차 세계대전 후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중국 침략전쟁의 공동모의 및 실시 책임으로 종신금고형을 받았으나 가출소 후 사망했다. 

고이소 구니아키는 1944년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내각이 붕괴한 뒤 총리대신으로 임명돼 제2차 세계대전을 이끌었으나 전쟁에서 패했다. 이후 국제전쟁재판에 회부돼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사망했다. 

아베 노부유키는 마지막 조선 총독으로 부임, 항복문서에 조인한 후 총독 자리에서 해임됐다. 

하지만 청와대는 풍수지리상으로 청와대 일대가 길지(吉地)중 길지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1990년 청와대 안 공사장에서 발견된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는 표석은 청와대 터가 풍수지리학상 명당이라는 것을 입증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노태우 정권 시절 청와대 터가 좋지 않아 10원짜리 동전 속 다보탑 속에 불상을 새겨넣었다는 풍문이 돌기도 했지만 현 정권은 풍수지리학상 청와대가 좋지 않다는 설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청와대 풍수


김규순의 풍수이야기 48.



 

조선시대에 한양풍수와 경복궁풍수 논쟁이 있었다면, 대한민국에서는 청와대 풍수논쟁이 풍수학자들마다 시시때때로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다. 청와대 풍수 논쟁은 어찌 보면 한양풍수논쟁과 경복궁풍수논쟁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달리 보아야 한다. 한양 풍수논쟁은 도읍지 선정에 관한 논쟁이고, 경복궁과 청와대는 

건물풍수에 관한 논쟁이다. 


경복궁의 위치와 청와대의 위치가 다르므로 같은 풍수논쟁으로 생각한다면 커다란 착각이다. 

풍수적으로 말하면 용맥도 다르고 건물의 좌향도 다르다.

청와대 터에 대해 풍수가들의 엇갈린 말들이 많다. 


이는 온전히 만점짜리 땅은 없는데도, 최고 권력자를 위해서는 만점짜리 땅을 찾아야 한다는 풍수가들의 

무조건 충성심에서 우러나오는 강박(?)관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는 소탐대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청와대에 들어가서 살펴보지 않은 탓에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의 지난 역사를 보고 지도로 살펴본 결과 경험칙으로 말 할 수는 있다.

풍수계의 일각에서는 청와대의 자리가 흉하다고 한다. 건물터와 건물은 크게 쓰임새에 따라 다르게 봐야 한다. 


청와대는 최고통치지가 머무는 곳이므로 국운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국운을 개인사와 혼동하여 살피니까 

역대대통령의 불운이 국가의 불운인양 착각하게 된 것이다.


형국론으로 청와대 터를 보면 꽃 수술대이다. 우백호는 인왕산이 험악하지만 유정하고 좌청룡도 겹겹이 감고 있는 

형상이다. 

청와대의 좌향은 경복궁과는 다르지만 황토마루를 안산으로 향하고 있는 것은 동일하다. 황토마루는 행정구역으로는 

정동으로 태조 이성계의 신덕왕후 강씨의 초장지였다. 지금은 영국대사관과 미국대사관저가 있다.


우리나라는 한국동란의 잿더미에서 경제적 성과를 이룩하여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어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우너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된 경우는 전무후무하다. 정치적으로도 세계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짧은

 기간에 민주화를 이룩하여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루어 세계인들의 부러움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이는 정권과는 무관하게 국운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달리 생각하면 최고 권력층을 희생양(?)으로 삼아 

대한민국의 국운이 상승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국운을 본다면 청와대는 흉지가 아니라 길지吉地이다. 최고 권력자의 행복을 위해 국민이 불행해지는 것 보다 

대통령이 불행해지더라도 나라는 발전하고 국민은 행복해진다면 길지가 아니겠는가. 대통령도 명예를 지키고 

국민들도 행복해진다면 말할 것도 없이 좋은 일이지만, 대통령만 행복하고 국민이 피폐해진다면 이는 원치 않는 일이다.

 

 


우리의 근현대사를 보면 청와대를 거쳐 간 주인들의 삶에 질곡이 많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부정선거로

 4.19의거를 재촉하였으며 양야들 일가는 자살하고 본인은 

하야하여 하와이로 망명하였다. 


윤보선 대통령은 국가에 대한 비젼이 약했던 탓에 

우유부단하게 처신하다가 5.16혁명으로 물러났고, 


박정희 대통령은 독재와 경제부흥기초 토대를 닦았으나 

사관학교동기이던 친구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저격으로 서거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동생이 구속되고

자신도 백담사에서 현대판 유배생활을 하였으며, 


노태우 대통령과 함께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불법비리에 대한 재판을 받고

 무기징역과 17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특별 사면되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IMF 사태를 맞이하였고, 

이권개입과 권력형 비리로 아들이 구속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세 아들 모두 비리와 연루되어 유죄판결을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형이 이권개입으로 구속되었고

, 자신은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이명박 대통령도 형과 정치적 동지들이 구속되었다.


대통령 개인적으로 불행한 일들이 연결고리처럼 이어져 있다. 

우리나라 현대사의 가슴 아픈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는 전근대적인 잔재인 불합리한 정치적 경제적 먹이사슬이 그 원인이다.

 먹이사슬의 희생자는 대통령 최측근들이다. 


최고 통치자 주변에는 항상 독배가 늘려 있다. 

확고한 통치철학이 없이 접근했다가 독배를 마실 경우 그 결과가 비참해진다는 것을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독배를 마시느냐 마시지 않느냐 하는 것은 개인의 내공에 달려 있다.

최고권력자들의 희생은 땅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시스템의 문제이다.


 이것은 지리地理의 문제가 아니라 천시天時를 따르지 못한 기득권층들의 탐욕 때문이다. 


탐욕에 의한 개인적 불행을 국운에 연계시키는 오류를 벗어나야 한다. 

고로 청와대는 대한민국의 길지이다.
 

 


 

저널리스트 김규순

서울풍수아카데미 원장

 [불교중심 불교닷컴, 기사제보 cetana@gmail.com]


 

정경연의 생활 속 풍수 이야기


청와대 터 


‘좋을까 나쁠까’


① 반복되는 청와대 풍수논쟁

청와대 터가 좋냐 나쁘냐에 대한 풍수논쟁이 또 한 번 일어날 성 싶다. 이명박 전 대통령 때문이다. 

청와대를 거쳐간 역대 대통령처럼 그도 

퇴임 후가 편안하지 않다. 4대강 사업 의혹과 자원외교 비리에 이미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기는 틀린 것 같다. 

우리는 언제쯤 퇴임 후에도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는 대통령을 볼 수 있을까. 


해방이후 70년 동안 10명의 전직 대통령을 배출했음에도 한 명도 

없다는 것은 국가와 국민의 불명예다. 

풍수적으로 땅의 좋고 나쁨을 판단할 때는 지리오결이라는 논리를 적용해 분석한다. 

지리오결이란 풍수지리에는 다섯 가지 중요한 이론이 

있다는 뜻으로 용·혈·사·수·향을 말한다. 청와대 터는 사와 향은 좋은 반면에 용·혈·수가 좋지 않다. 


풍수에서는 용과 혈이 위주라고 했으니

 결론적으로 좋지 않다는 뜻이다.
 

성완종 리스트에 직격탄을 맞은 청와대의 모습.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2015년 4월 2주차(6~10일) 주간집계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 3월 1주차 이후 5주일 만에 다시 30%대로 떨어졌다.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성완종 리스트에 직격탄을 맞은 청와대의 모습.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2015년 4월 2주차(6~10일) 주간집계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 3월 1주차 이후 5주일 만에 다시 30%대로 떨어졌다.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용은 산맥을 말하며 그 흐름이 마치 용처럼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용을 따라 땅의 생기인 지기가 전달된다. 


청와대는 북한산(836m), 보현봉(714m), 형제봉(463m), 북악산(342m)을 조종산으로 한다. 


북한산에서부터 북악산까지 산세가 순해지며 내려오지만 험한 암석이 박혀 있어서 기가 세고 험하다. 


이러한 지형은 권위적이고 독선적이어서 부드럽고 겸손한 대통령을 기대할 수 없다. 
 

혈은 용을 따라 전달된 지기가 모인 땅이다. 이른바 명당자리가 곧 혈이다. 보통은 산맥의 끝자락에 있으며

 기가 센 바위산보다는

 순한 토산 자락에 많이 위치한다. 


본래 청와대 터(구본관 자리)는 북악산에서 경복궁으로 내려가는 용맥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러한 곳은 과룡처라고 하여 지기가 빠져나가는 곳이다.
 

그런데 왜 이곳에 터를 잡았을까. 일제가 경복궁의 왕기를 억누르기 위해 총독부 관사를 지은 것이다. 

아울러 경복궁 정면에는 거대한 총독부 청사를 지어 앞을 가로 막아버렸다. 

위에서는 짓누르고 앞에서는 가로막은 탓에 조선왕기가 끊기고 말았지만

 이곳에 거주한 조선 총독들 역시 말로가 좋지 않았다. 현 본관은 노태우 정부 때 경복궁으로 

내려가는 맥을 피해 옆에 지은 것이다. 

수는 용의 흐름을 멈추게 하여 혈에 기를 모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청와대는 앞에 물이 없으므로 맥이 멈추지 않는 곳이다.

 정문을 지나 경복궁 신무문을 거쳐 근정전으로 내려간다. 


그곳에는 경회루에서 흘러내려온 금천교가 있어서 용맥이 멈췄으니 조선왕조의 정궁이 자리 잡은 이유다. 

고려 때 이궁인 남경 터를 청와대 자리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고려 숙종 때 김위제는 목멱산(남산) 

북쪽 삼각산 남쪽 평지에 남경을 설치할 것을 주장하였다. 청와대는 평지가 아닌 산지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청와대 터는 풍수가들 사이에서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대체로 안 좋다는 쪽이 우세하다. 좋은 터를 물색하여 대통령이 

편안하게 국사를 돌보는 것이 곧 국민이 행복해지는 일이다. 지금의 청와대는 관광지로 활용하면 명소가 될 것이다. 

청와대를 이전하더라도 국익에 손해 볼 것은 없다. 

 

[정경연의 생활 속 풍수 이야기] 청와대 터 ‘좋을까 나쁠까’<정경연 도시계획학 박사·인하대 정책대학원겸임교수>


4월27일부터 ‘정경연의 생활 속 풍수 이야기’를 격주로 싣습니다. 

정경연 박사는 

전통 풍수지리 이론과 도시계획을 접목한 풍수지리 전문가입니다.


청와대 본관 터는 조선시대 때 공신들이 임금에게 충성을 맹세하는청와대 터 귀신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충성서약의 장' '공신회맹 터'

 청와대 터 귀신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조성제 舞天문화연구소장


청와대의 비극과 '터'

<칼럼>청와대는 이귀방(裏鬼方)

일곱 여인들의 한이 서려 있는 곳

청와대 옮기지 않으려면


 '칠궁 해원굿'으로 

국운 상승 기원해야 (글쓴이의 개인적 견해)


 
청와대 터 귀신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청와대는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조선의 주산인 백악산의 맥을 끊기 위하여, 

경북궁 후원 백악산 밑에 
총독부 관저를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해방이 되어 경무대란 이름으로 이승만 대통령집무실과 거처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몇 번의 
개보수와 증축을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도 예비 대권주자들이 청와대의 주인이 되고자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기 싸움을 하고 있지만 

청와대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비극은 시작될 것이라는 것이 역대 대통령을 통하여 증명되었다.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국민들로부터 존경과 신망을 받으며 온 국민의

축복과 기대 속에 당당하게 청와대에 입성 하였지만, 
청와대를 나올 때는 하나같이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거나,


 국민의 지탄을 받는 소인배로 

전락하여 청와대를 떠나게 되니 
이러한 현상은 청와대의 비극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이러한 청와대의 비극은 칠궁과 청와대 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청와대 옆 인왕산 길, 많은 사람들이 다니면서도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청와대 담장 안에 있는 기와집 몇 채, 
청와대의 건물과 어울리지 않는 이 몇 채의 기와집이 무엇인가 궁금해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지만 

대부분은 그냥 지나친다. 

이 낡은 기와집은 청와대의 일부가 아닌 바로 육상궁으로 지금은 칠궁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그러면 칠궁은 무엇이며 왜 청와대 안에 있는지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칠궁은 본래 모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동이>라는 사극에 나오는 인물로, 조선시대 숙종의 후궁이며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위패를 모시기 위하여 숙빈묘라고 부르며 세워졌다.
 

구중궁궐에 최하위 계층인 무수리 출신으로 숙종의 눈에 들어, 성은을 받은 덕에 영조를 잉태하게 되었지만,
 장희빈의 투기로 온갖 고초를 겪으며 한 많은 삶을 살다 간 


‘최무수리’ 즉 최숙빈의 위패가 모셔져 있었으나,
 1753년 영조 29년에 육상궁으로 개칭하였으며 그 후 영친왕의 어머니 순빈 엄씨를 포함한 일곱 분을 모셨기 
때문에 칠궁이라고 하였다.
 

칠궁에는 돌아가신 후 왕으로 추대된 원종(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이 된 인조의 생부)의 어머니 인빈 김씨, 
조선왕조 후궁 중에 대표적인 인물인 경종의 어머니 희빈 장씨(장희빈), 

영조의 어머니인 무수리 출신의 숙빈 최씨, 돌아가신 후 


왕으로 추대된 진종(영조의 장자인 효창세자)의 어머니 정빈 이씨,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 순조의 어머니 수빈 박씨, 

조선조 마지막 왕세자인 영친왕의 어머니 순빈 엄씨 등 일곱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조선왕조의 임금과 왕비는 죽어서 종묘에 위패가 모셔지지만, 왕의 생모이지만 후궁이기 때문에 죽어서 

종묘에 봉안되지 못하고 별도로 위패를 봉안하는 곳을 마련하였는데 그곳이 칠궁이다. 

서두에 말했듯이 지금의 청와대 터는 옛날 경복궁의 일부였으나 일본이 조선총독부 관사를 

그곳에다 지어 사용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하여 왔지만, 


본래 청와대 터는 귀방(鬼方)즉, 귀신의 방위라고 한다. 

청와대는 사람이 사는 터가 아니고 귀신이나 신명이 활동하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 것도 숨어서 활동하는 이귀방(裏鬼方)이기 때문에 한 많은 여인들을 모시는 칠궁을 그 자리에 

세웠던 것으로 대통령집무실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귀신들과 함께 기거하면서 귀신들을 몰라라하고 있다면 분명 귀신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알려 합당한 대우를 받으려고 그곳에 사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때는 일 년에 한 번씩 칠궁에 제를 지내 일곱 영령들을 위로하여 드렸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이 망하고부터 지금까지 누구 한 사람 칠궁에서 제를 지낸 적이 없으며, 


또 제를 올리고 싶어도 올릴 수 없는 처지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필자는 청와대를 당장 옮겨야 대통령과 나라가 편안해 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현실이 그러하지 못하니 대통령으로 당선된 분이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 


자신이 믿고 따르는 종교와 상관없이 국가와 민족,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라도 칠궁에다 제를 올렸으면 한다. 


그렇게 하여 칠궁에 계신 일곱 영령들과 그 곳에서 활동하는 귀신들을 달래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인들은 전세방을 얻어 가도 사는 동안 주인에게 잘 부탁한다고 인사를 하는 법인데, 

하물며 5년 동안 집세도 한 푼 내지 않고 들어가 살면서, 

집주인을 나 몰라라 하고 쳐다보지도 않는다면 칠궁에 계신 일곱 영령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살아서는 구중궁궐의 엄격한 법도와 많은 후궁과 정비의 시샘과 음모 속에서 숨 한 번 크게 쉬어 보지도 

못하고 살다가,

 도리어 왕자를 낳은 것이 화근이 되어 모자가 목숨을 연명하기 위하여 감수하여야 했던 

그 수모와 한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자식이 나라의 임금이 되었지만 본인은 죽었어도 후궁이라는 굴레 때문에 

종묘에 모셔지지 못하고 경복궁 후미진 한편에 팽개쳐졌으니 그 한인들 오죽하겠는가?

제3공화국 시절 당시 청와대에 근무한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로,

 지금처럼 어색하게 담 밖으로 기와지붕이 나와 있게 된 이유가 된다.

인왕산으로 새 길을 내면서 칠궁을 건드리지 않는 방향으로 도로 계획을 세웠지만, 

자기의 별장이 도로에 포함된 어느 재벌과 당시의 서울시 책임자의 장난으로 

칠궁의 담을 헐어내고 인왕산 길을 내고 지금의 흉측한 모습이 되었으며, 


그 해 8월15일 <문세광> 저격사건이 일어나 온 국민들로부터 존경받으며 국모로서의 모범을 

보여 준 육영수여사가 서거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몇 년 후 칠궁의 정문을 경호 책임자가 마음대로 방향을 바꾸어 지금의 방향으로 대문을 

다시 세우고 난 뒤 

다시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이 일어났다고 하니 우연이라고 가볍게 넘겨 버리기에는 무엇인가 

이상한 기분이 든다. 오뉴월에도 여자가 한을 품으면 서리가 내린다고 하였다. 

더군다나 칠궁의 일곱 여자는 살아서도 한 많은 삶을 살았건만 죽어서까지 경복궁 후미진 곳에 방치되어 

자손들로부터 제삿밥 한 그릇 제대로 못 받는 한 많은 세월을 원망하며 독을 품고 있는데, 

대통령이 되었다고 인사 한번 없이 마음대로 남의 집에 들어와 사는 사람들이 예쁠 리가 없다. 

또 집주인인 일곱 영령들에게 허락도 구하지 않고, 마음대로 주인집 담장을 헐어 길을 내고 그것도 모자라 

대문까지 마음대로 바꾸어 놓았으니, 그래도 후손이라고 참았던 한과 분노가 폭발한 결과가 

바로 대통령의 서거가 아닌가 한다. 

의친왕의 아들인 이석 공의 이야기를 들으면, 어렸을 때 간혹 칠궁으로 들어가곤 하였지만 

들어갈 때마다 항상 찬바람이 불고 무시무시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또한 어른들이 그곳에는 출입을 못하게 항상 만류를 하였다고 한다. 

옛적에는 봉선(封禪, 한 무제가 천자에 오르고 난 뒤 태산에 올라 하늘에 고한 것)이라 하여 천자에 

오르게 되면 자신이 천자가 되었음을 하늘에 고하는 제의를 올렸다. 

그리고 자신이 천자로 있는 동안 나라의 번영과 태평을 기원했듯이 우리도 대통령이 새로 취임하면 

반드시 하늘에 고하여 자신의 임기동안 국가의 번영과 더불어 국민의 안위와 태평을 기원하였으면 한다. 

대통령이 하늘에 천제를 올리는 같은 시간에는 대한민국의 모든 종교가 자신들이 믿는 신께 국가의 

번영과 발전을 함께 기도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칠궁에 제를 올리며 일곱 분의 영령들을 위로하고 

잠시 사용하겠노라고 고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칠궁의 일곱 분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제를 올린다고 하여 이 땅에 사는 후손된 몸으로 

부끄러울 것이 무엇이며 종교를 들먹이며 외면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생각한다. 

청와대에서 직접 제를 올리면 더 이상 좋을 수 없겠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곤란하다면 <이씨 종약원>에 일임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종묘도 일 년에 한 번씩 종묘제례를 드리고 있으니 칠궁에 계신 분들도 당연히 

자신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일 년에 한 번이라도 합당한 대우를 받고 싶어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21세기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하겠지만, 필자는 칠궁에 

계신 일곱 분의 분노에 찬 모습이 자꾸만 느껴져 두렵기만 하다. 

언제 칠궁에 계신 일곱 분을 위하여, 아니 대통령의 임기 동안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과 더불어 훌륭한 업적을 쌓아, 퇴임 시에는 취임 때보다 더 많은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역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대통령이 되기를 기원하는 칠궁제를 지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여 본다. 
관련 이미지
이 글을 처음 쓴 해가 1997년이었다. 

그 당시 신문기자로 퇴직한 어느 분이 이 글을 청와대 비서실로 보내, 

느닷없이 청와대 비서실로부터 원론적인 답장을 받아 당황한 적이 있다.

그리고 다시 이 글을 누군가 청와대로 전달하여 

노무현 정부시절인 2006년 10월 23일 정오에 칠궁에 대한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칠궁 제사를 공개적으로 하지 않고 글을 쓴 필자도 모르게 제사가 진행되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으며, 너무 늦게 시작했다.

또 매년 10월 넷째 주 월요일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진행한다고 하지만,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사람이 죽으면 반드시 지노귀굿으로 죽은 영혼을 인도하고 그 원한을 달래주었다. 

그런 연유로 2007년 칠궁에 계신 일곱 영령들을 위한 <칠궁해원굿>을 하려고 준비하였다. 

국가의 무궁한 발전과 번영을 기원하고 국민들로부터 영원히 존경받는 전직대통령을 

모시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기원하고자 준비하였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과 훌륭한 전직대통령을 모시고 사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되기 위하여 반드시 <칠궁해원굿>은 반드시 해야 된다고 믿고 있다. 


아울러 귀신이 사는 터에 나라 대통령의 집무실을 계속 둔다는 것도 큰 문제이므로, 

청와대를 옮기는 것 또한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청와대 터 귀신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조성제 舞天문화연구소장] 

<칠궁엔 누가?> 
육상궁:숙종의 후궁이며,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
저경궁(儲慶宮):선조의 후궁이며, 추존왕 원종(仁祖의 아버지)의 생모 인빈 김씨(仁嬪金氏)

대빈궁(大嬪宮):숙종의 후궁이며 경종(영조의 이복형)의 생모 희빈 장씨(禧嬪張氏)
연우궁(延祐宮):영조의 후궁이며, 추존왕 진종(영조의 첫째 아들)의 생모인 정빈 이씨(靖嬪李氏)
선희궁(宣禧宮):영조의 후궁이며 추존왕 장조(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映嬪李氏)
경우궁(景祐宮):정조의 후궁이며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綏嬪朴氏)
덕안궁(德安宮):고종의 후궁이며, 영친왕의 생모인 순비 엄씨







출처: http://obangthai.tistory.com/1473 [방콕파타야 태국황제여행밤문화 vip케어 라운딩풀빌라호텔호핑투어멤버쉽전문밤문화 obangthai조실장 카톡 obangthai pattaya999 라인obangthai 텔레그램 pattaya999]

 

 

출처 : 우소인~
글쓴이 : 알송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