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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어느 판사의 감동적인 이야기

발란스건강 2015. 12. 9. 11:24

 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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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판사의 감동적인 이야기


김 기옥 부장판사


서울 서초동 소년 법정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서울 도심에서 친구들과 함께


오토바이를 훔쳐 달아난 혐의로 구속된 소녀는


방청석에 홀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조용한 법정 안에 중년의 여성 부장판사가 들어와


무거운 보호처분을 예상하고


어깨가 잔뜩 움츠리고 있던 소녀를 향하여 나지막히


다정한 목소리로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날따라 힘차게 외쳐 보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게 생겼다.”


라고 예상치 못한 재판장의 요구에


잠시 머뭇거리던 소녀는


나지막하게


나는 이 세상에서...”라며


입을 열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더 큰소리로


나를 따라 하라고 하면서



"나는 이 세상이 두려울 게 없다.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


"나는 무엇이든지 할수 있다."



라고 큰 목소리로 따라하던 소녀는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라고


외칠 때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소녀는 작년 가을부터


14건의 절도, 폭행 등 범죄를 저질러


한 차례 소년 법정에 섰던 전력이 있었으므로


이번에도 동일한 수법으로 범죄를 저질러


무거운 형벌을 받게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판사는 소녀를 법정에서 일어나 외치기로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었습니다.



판사가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이 소녀가 작년 초까지만 해도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반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였으며


장래 간호사를 꿈꾸던 발랄한 학생이었는데


작년 초 귀가 길에서 남학생 여러 명에게 끌려가


집단 폭행을 당하면서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소녀는 당시 후유증으로


병원의 치료를 받았고 그 충격으로


홀어머니는 신체 일부가 마비되기까지 하였으며


소녀는 학교를 겉돌았고 심지어


비행 청소년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범행을 저지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판사는 다시 법정에서 지켜보던


참관인들 앞에서 말을 이었습니다.


이 소녀는 가해자로 재판에 왔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삶이 망가진 것을 알면


누가 가해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 아이의 잘못의 책임이 있다면


여기에 앉아있는 여러분과 우리 자신입니다.



이 소녀가 다시 이 세상에서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잃어버린 자존심을 우리가


다시 찾아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눈시울이 붉어진 판사는


눈물이 범벅이 된 소녀을 법대 앞으로 불러세워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중요할까요.


그건 바로 너야.


이 사실만 잊지 않는다면


그리고는 두 손을 쭉 뻗어


소녀의 손을 잡아주면서 이렇게 말을 이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꼭 안아주고 싶지만


너와 나 사이에는 법대가 가로막혀 있어 이정도 밖에


할 수 없어 미안하구나.”





이 사건은 금년 4월에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 소년 법정에서


16세 소녀에게 서울 가정법원 "김귀옥" 부장판사가


판결을 내렸던 사건으로


이례적인 불처분 결정으로 참여관 및 실무관


그리고 방청인들까지 눈물을 흘리게 했던 사건입니다

(폴모리악단) 연주곡 모음 70곡

 

Paul Mauriat


(1925. 3. 4 ~ 2006. 11. 3)


프랑스 남부의 마르세이유에서 태어났다.


 

9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1941년에 마르세이유 국립 음악원을 졸업,



이후 아마추어 재즈 밴드를 결성하거나 스튜디오 디렉터, 오케스트라 지휘 등의
활동을 하다가 1965년에 ‘폴 모리아 그랜드 오케스트라’를 결성했다.



이어 앙드레 포프의 곡을 편곡해 출시한 〈Love Is Blue〉(L'Amour Est Bleu)는


5주간 미국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였고,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500만 장).


그 외에도 El Bimbo, Toccata, Penelope, Nocturne 등의 히트곡을 남겼다.
대한민국과 일본, 대만, 홍콩,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으며,
1969년의 첫 방일과 1975년의 첫 방한 이래 도합 1,200회 이상 공연하기도 했다.

 ‘아리랑’과 ‘돌아와요 부산항에’(Please return to Pusan port)를 경음악으로 편곡,
1976년에 프랑스에 아리랑을 소개하여 이후에 유럽에 아리랑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994년에는 그가 속해 있었던 필립스 레이블에서 일본 포니 케넌에 이적했다.
1995년, 고베 대지진 희생자를 위로하기 위해  Quartet for Kobe(고베를 위한 4중주)를
발표. 고베에서 녹음했으며 폴 모리아가 피아노 파트, 레이몽 르페브르가 플릇 파트,
프랑크 푸르셀이 바이올린 파트, 프란시스 레이가 아코디언 파트를 맡았다.
1996년 2월 일본 도쿄 히토미 키넨홀에서 3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열었다.
그 공연 실황은 포니 케넌이 레이저디스크, DVD, CD로 발매했다.
1997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화훈장을 받았다.

1998년의 일본 오사카 공연을 끝으로 연주 활동은 은퇴했지만,
파리에서 은둔하며 공연 총 감독을 맡았고 그의 악단은 대한민국, 일본, 중국,
 러시아에서 연주 활동을 계속했으며, Gilles Gambus가 2004년까지 지휘했고
2005년부터는 Jean-Jacques Justafre가 지휘했다.
2002년 저술가이자, 코멘테이터인 Serge Elhaik가 폴 모리아의 삶을 다룬
 Une vie en bleu(A life in blue)를 프랑스어와 일본어로 발간했다.
2006년 한국과 일본에서 공연할 계획이었으나 그의 사망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2006년 10월 말, 프랑스 남부 페르비뇽의 별장 체재중, 컨디션 불량으로
검사를 받고 입원했는데, 급성 백혈병으로 판명,
동년 11월 3일 오전 1시, 급성 백혈병에 의한 심부전 때문에


페르비뇽의 병원에서 향년 81세로 사망했다.

 

 

 

 


출처 : 사랑하는사람들의 인생
글쓴이 : 김세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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